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단 편집) === 시민들의 저항권 발동 그리고 내려진 불법적 자위권 발동 === [[파일:5.18 시민군.jpg]] 헬기 사격 등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시민들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 경무장을 시작하면서 계엄군과 교전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옥상빌딩등에서 시민군하고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에게 조준사격을 했고 시민군은 이에 대응사격을 하면서 광주시내 전체가 시가전 양상으로 들어갔다. 계엄군 수뇌부들은 엄청나게 당황했고,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계엄군 수장 [[전두환]]은 자기가 먼저 학살을 시작한 주제에 '자위권 발동'을 주장했다.[* "哨兵 에 대해 亂動時에 군인복무규율에 依據자위권 발동强調".][* 1차: 2군사령부, 광주 권충정작전간 군지시 및 조치사항(보안사, 383-1980-95,149쪽 인용), 2차:12.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83쪽.] 오후 16시 30분엔 국방장관실에서 [[주영복]]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 [[이희성]]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김종곤]]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윤자중]]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류병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진종채]] [[제2작전사령관|제2군사령관]], 백석주 연합사부사령관,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이 모여서 회의한 결과에 따라 신군부 반란 세력이 부리던 계엄군의 소위 말하는 자위권 발동이 공식으로 결정됐다.[* 1차: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지검]], 이희성 피의자 신문 조서(4회), 12 12,5 18수사기록 16권, 25732쪽. 2차: 12.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84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